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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의 여행기

푸르른 탄자니아, 소금 호수의 에리네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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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죠. 가뭄이 들어 쩍쩍 갈라진 땅 위에 배만 볼록 튀어나온 아기가 누워있거나, 영양실조에 걸려 삐쩍 마른 어머니의 젖을 물고 있는 아기. 상처가 곪아 파리가 온몽에 붙었지만 떼어낼 힘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 병들어 쓰러진 사람들이 곳곳에 있는 그런 모습들. 이유가 뭘까요? 생각해보면 아마 월드비전이나 유엔, 각종 국제구호개발 NGO 단체들의 후원을 목적으로 한 영상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후원을 많이 받아야 많이, 더 잘 도울 수 있으니 불쌍한 모습을 많이 보여줘야 한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런 모습들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아프리카는 전부 가뭄이구나, 영양실조구나, 너무 가난하고 못사는구나 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 같아요.

제가 다녀온 탄자니아는 생기가 넘치고, 너무나 푸르르고 밝은, 풍성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가난하죠. 한끼 먹는 것도 힘든 집 아이들이 많았고, 다 무너져 가는 집에서 사는 사람들도 보았어요. 하지만 그들이 마냥 눈물만 흘리고 바닥에 주저 앉아 있진 않았답니다. 

 

 

2014년, 그 당시 탄자니아 국제 공항은 테러로 인해 직항이 없었어요. 그래서 중국에서 경유하고, 케냐 나이로비 공항에서 차를 타고 탄자니아로 이동했습니다. 도착하기 전 날, 한국인 선교사의 집에 무장 강도가 침입했다는 소식에 총기를 들고 있는 가드를 대동하여 이동했는데 긴장감이 넘치더라고요. 창문을 열지 말아라, 귀중품이나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지 말아라 등등의 안전에 대한 지시사항들을 잘 지켜야 했어요. 실제로 먹을 것을 달라, 돈을 달라 요구하며 창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탄자니아에서는 40일을 지냈는데요. 탄자니아 3개의 수도중 아루샤에서 일주일정도를 보내고 한달여간은 신기다라는 지역에서 보냈어요. 아루샤에서 차를 타고 6시간을 달리면 나오는 곳 신기다. 가는 길 내내 푸르렀던 들판과 멋진 나무들, 야생 동물들을 보며 여기가 내가 아는 아프리카가 맞나? 하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케냐와 탄자니아에 분포해 있는 마사이 부족들을 중간중간 보기도 했고요. 날 것의 모습들을 보니 더욱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이상한 가면을 쓰고 산 꼭대기에 서서 양을 치던 소년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운이 좋으면 야생 기린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전 보지 못했어요. 

 

 

신기다에서 한달간 지내던 숙소 근처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어요. 이 호수는 특이하게도 소금물이었는데요. 이 곳은 근처의 사람들이 물을 길어 가거나 낚시를 하는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몇해전 홍수로 하마 한마리가 떠내려와 살고 있었어요. 위험하진 않냐 했는데 밤에만 움직인다고 하더라고요. 가끔 입을 쩌억 벌리고 하품을 하는 하마의 모습을 보는게 참 즐거웠어요. 아침에 산책을 나가면 밤새 돌아다닌 하마의 발자국, 하이에나의 발자국을 보며 놀라기도 했고요. 이 소금 호수에는 매일 같이 물을 기르러 오는 소녀가 있었어요. 이름은 에리네스타. 가족들을 위해 무거운 물을 머리에 이고, 한손엔 동생의 손을 꼭 잡고 먼 거리를 오가는 소녀였어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안일을 해야만 하는 에리네스타를 자주 만나면서 좀 더 현실적으로 이 곳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에리네스타는 탄자니아에서의 40일 중 저에게 가장 오랫동안,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일입니다. 이 친구의 그림도 그렸고요. 소금 호수라는 시도 지었거든요. 사파리 투어나 탄자니아 장마당에 갔던거나, 2천명의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를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저에게 감동을 줬던 친구. 옛날 우리 할머니들처럼 머리에 얹은 물을 가득 담은 바케스가 흔들리지 않더라고요. 얼마나 오랜시간 이 일을 반복했을까, 더러운 소금 물을 떠다가 마시기도, 씻기도 할텐데 괜찮은걸까. 오만 생각을 다 했지만 사탕이나 간식거리를 주는 것 말고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실질적으로 없었어요. 이 친구를 위해 기도했지만 사실 그런것보다 하루 한 끼 밥이라도 대접하는게 더 낫지 않나 라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대체 이 세상은 무엇이길래 어느 나라에선 먹을 것이 넘쳐나서 버리기도 하고, 맛이 없다고 버리고, 궁금해서 한 입 먹고 버리고 이런 것들이 당연한데 어느 나라에선 하루 한끼 먹기도 어렵고, 어린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 흙을 구워 쿠키랍시고 먹는 이런일이 일어나는 걸까? 슬픈 마음이요. 운이 좋아서 발전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다행이다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다 같이 살 수 있을까 같은 답이 없는 고민이 시작되었어요. 어떤 조금이나마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닿을 수 잇을까? 고민을 하다 코이카라는 단체도 알아 봤고, 실제로 신청해서 훈련소까지 갔었는데 아쉽게도 코로나로 무산되었어요. 지금은 그런 마음이 많이 사그라들긴 했어요.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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