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의 여행기

뜨거웠던 인도, 나의 첫 여행지 올드델리 2012

리조이 2024. 5. 2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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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나의 첫 인도
익숙했지만 달랐고
특별했지만 평범했다.
사랑이 넘치는 나라는 걸 알았고,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나의 비전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던 날들이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또 와야지 라고 혼자서 되내었다.


 

대학생, 성인이 되자마자 내가 하고 싶었던 일 중의 하나는 인도로 여행을 가는 것이었어요.

배낭여행의 끝이라는 인도. 

남들은 기피하고 더럽다, 위험하다 하는 인도를 저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동경했습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목사인 친오빠가 봉사활동으로 선교로 자주 찾던 곳이었거든요.

그 곳에서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잘 다녀왔다, 사진을 보내오는 오빠의 모습에

저는 인도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곳이구나 나도 그곳에서 행복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벌써 10년도 넘은 인도에서의 추억이네요.

인도는 한 번 다녀와서 너무 좋았던 기억에 세번이나 연달아 갔었는데요.

사실 여행이라기보단 선교와 봉사의 목적이 훨씬 강했지만

저에겐 그 어떤 곳보다 가장 행복했던 여행지로 손에 꼽히는 곳 중 하나입니다.

 

케세이퍼시픽은 제가 살면서 처음으로 탄 비행기 회사였어요.

모든것이 신기했고, 달콤한 사과주스를 마시면서 앉아 설렘을 마고 발산하던 20살 리조이.

뉴델리 공항에서 내려 차를 타자마자 보인 광경은 실로 아찔했습니다.

고속도로 다리 아래에 깔 것도 없이 헐벗은채 잠이 들어 있는 단란한 가족들.

누가 보든 아랑곳 않고 바지를 훌렁 벗어 노상방뇨하는 아저씨, 아줌마, 어린 아이들.

올드델리와 뉴델리의 모습이 크게 다르진 않았습니다.

킹스웨이라는 곳에 숙소가 있었는데, 이 곳은 그래도 부유층이 사는 곳이라 경비가 삼엄했어요.

그 경비를 뚫고 다니는 동네 개들은 무서웠지만요.

 

매일 오전, 오후 슬럼가를 다니며 어린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폴리스라인이라는 지독하게 가난한 동네에는 병들고 불쌍한 아이들이 많았어요.

그것이 인도의 전부는 아니지만 인도의 더욱 깊숙한 곳을 보니 그 어느곳도 비교될 수 없겠더라고요.

와중에 저의 어린시절 동네와 닮은 구석들이 있어서 또 더럽다 느껴지진 않았어요.

4~5살 밖에 안된 야윈 아이들이 동생들을 양쪽에 들쳐 메고 다니면서

저에게 얻은 사탕을 동생에게 먼저 물려주는 모습 또한 감동이었습니다.

너무 어릴때부터 철이든 탓일까요? 누나 옆에 매달려 있는 아기의 눈은 초롱초롱한데,

똑같은 눈매를 한 조금 큰 아이들의 눈엔 생기가 없어 보였습니다.

 

 

인도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들 중에 하나는 종교였어요.

불교의 시작지인 인도라 불교가 가장 대성한 나라일 줄 알았는데

인디안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는 힌두교였어요.

곳곳에 보이는 오렌지족 사제들은 모두 힌두사원의 사람들이었어요.

색감이 아주 예뻤던 인도로 기억되는 이유기도 합니다.

 

매일 40도를 넘기는 인도에서는 갑자기 빈혈처럼 픽 쓰러지는 경우가 많아요.

너무 더워서 땀이 나지만 또 햇빛이 너무 강렬해서 금방 말라 

내가 더웠나? 싶을때쯤 더위를 먹고 쓰러지게 되더라고요.

 

첫 인도에서의 뜨거웠던 기억은 비단 온도 뿐만은 아니었어요.

강렬한 사람들의 눈빛도 한몫했죠.

왜이렇게 사람들이 나를 쳐다볼까? 했는데, 인도 시골엔 아직 관광객이 많이 없을때였어요.

거기다 백인도 아닌 황인족들이니 얼마나 더 신기했을까요?

불가촉천민으로 하대받은 20살의 리조이의 경험담도 있었답니다.

곳곳에 서 있는 폴리스들이 친절했던 기억이 나는데,

요즘은 무서운 기사들도 많이 올라오더라고요. 

 

인도는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3번의 타지마할의 경험기도 곧 써봐야겠어요.

인도를 다녀오고 나서 10년이 지난 지금 저는 갈라파고스를 꿈꾸고 있답니다.

여러분들은 너무나 바라던 꿈의 여행지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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